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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트제럴 판타지 AU 1-1.

블랙커피우유 2018. 6. 2. 21:29

*퇴고 안함/카트제럴 전제/장편 연재/내킬 때마다 올라옴/판타지 AU/설정은 적으면서 생각나는대로



L국은 총 26개의 마을과 1개의 수도로 이루어져있다. 그중에서도 수도인 런던은 특별하다. L국의 어떤 마을이라는 부가적인 설명이 없다면 L국이라는 말은 런던을 뜻할 정도이니. L국이라는 국가명 자체가 런던의 이니셜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27개의 마을이 하나로 합쳐질 때 런던이 마을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정으로는 옆 나라 A국이 있다.

A국의 수도 아스란트의 요리는 고풍스러운 맛이 있었지. 카트리는 거대한 외벽을 올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벌써 2시간째였다. 외벽이 쿠키로 보일 정도로는 시간이 경과했다. 카트리의 앞에서부터 뒤에까지 런던에 입국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입국심사를 거치기 위해 줄을 이루었다. 길고 긴 행렬의 중간 중간에서는 장사꾼들이 주스나 간식거리를 팔며 돌아다니고 있다. 카트리는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던 차였기에 근처까지 다가온 장사꾼이 조금 높은 값을 불러도 흔쾌히 값을 치룰 생각이었다. 고향인 런던의 맛집은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배를 비워둘 심산이었으나 그것도 2시간 전의 이야기다. 먹거리가 가득한 나무상자를 앞에 매고 천천히 다가오는 장사꾼에게 손을 올렸다.

 

버터 오징어구이랑 닭꼬지, , 그 마늘빵도 맛있어 보이네요. 그것도 주세요. 마실 건……, 오렌지 주스로.”

 

그렇게 기분 좋게 점심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카트리가 장사꾼에게서 주문한 음식을 받아들었을 때 일이 터졌다.

 

이봐 너, 줄에서 나갔잖아?”

?”

금방 줄에서 나가놓고 은근슬쩍 끼어들어오려 하다니 양심도 없냐? 뒤에 사람들 안보여?”

 

카트리가 있던 자리에 발을 길게 뻗어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은 그 남자는 고개를 쳐들어 뒤에 쭉 늘어선 사람들을 눈짓하며 순식간에 카트리를 양심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줄에서 나갔다고 해도 음식을 받기 위해 한발자국 움직인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양심이 출타한 건 어느 쪽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카트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픽 새어나가는 웃음을 흘리며 반박했다.

 

그럼 이 비좁은 통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걸 받아야겠어요? 한차례 일찍 들어가 보겠다고 남을 사지로 몰고 가시면 안 되죠.”

사지라니, 누가 들으면 내가 댁을 죽이는 줄 알겠수.”

죽이는 거 맞죠. 이 땡볕에 몇 백 차례나 기다렸는데 또 그 짓을 반복하라는 거잖아요? 제가 열사병으로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그러신담.”

 

시비가 붙은 와중에도 카트리는 오징어다리를 질겅질겅 물어뜯고 있었다. 일단은 배가 고팠다.

이런 종류의 말싸움은 처음이 아닌지라 카트리도 침착했다. 4년이나 여행하다 보면 오만 사람들과 오만가지 이유로 싸움이 붙는 법이다.

힐끔 옆 눈으로 입국관리장 쪽을 살펴보니 아직 줄이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다투는 도중에 줄이 움직인다면 남자가 어영부영 카트리의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카트리는 눈앞의 남자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꼬투리를 잡는 사람을 진지하게 상대하면 손해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도,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남자는 상대를 잘못 고른 셈이다.

 

줄에서 나간 사람이 잘못이지!”

뭐 그래요. 그 말이 맞다 치자구요. 그런데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당신의 짐짝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남자가 카트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문 모를 표정을 짓자 카트리는 팔짱을 끼고 검지만 치켜 올려 짐짝을 가리켰다.

 

아저씨의 짐도 줄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데요.”

 

은근슬쩍 아저씨로 격하된 남자가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자 카트리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여기에 줄서있는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짐이 주인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칩시다. 주인은 줄을 벗어나지 않고 그게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친절하게 그 물건을 주인에게까지 배달해줘야 합니까? 직접 가지고 오는 게 도리겠지요. 그럼 당연히 여기에 서는 걸 포기해야 하고요. 하지만 짐이 바로 옆에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짐은 본래 주인이 들고 다니는 거잖아!”

그야 그렇죠. 그걸 누가 몰라요?”

 

카트리의 말이 점점 길어지자 당황한 기색의 남자가 타당한 말을 했으나 소용없었다. 카트리는 남자의 말에 수긍하면서 도리어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듯한 태도를 취하며 남자의 의견을 묵살했다.

 

소유권을 주장할 것도 없이 자신의 물건임이 확실하죠. 도둑질한 물건이 아닌 이상은요. 주인의 물건인 게 확실하니 줄에서 약간 벗어나도 괜찮은 거예요. 앞이나 뒤에 두기에는 비좁고 남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옆에 두는 걸 용서받는 거죠. 주인이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주인과 한 세트. 말하자면 일심동체. 짐도요, 줄을 서있는 거라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말을 이은 카트리는 남자의 발 근처에서 나뒹구는 짐을 척하고 가리켰다.

 

짐은 짐이지 무슨 사람처럼…….”

소중한 짐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다니요? 짐은 여행의 동료에요. 없어선 안 될 존재라고요. 당신의 일행에게 너무 혹하시군요.”

 

이쯤 되면 남자도 카트리의 듣도 보도 못한 논리에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제 서야 카트리를 건드린 것을 후회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후였다.

 

전 분명히 짐을 자리에 두고 움직였으니 제 자리는 저의 일행에 의해 지켜졌어요. 짐이 멀리 떨어져있으면 안되듯 저도 저 멀리까지 개별행동을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짐짝처럼 약간 떨어져있는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거죠. 제가 겨우 한발자국 떨어진 걸로 자리를 이탈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당신의 짐도 자리를 이탈한 거예요. 당신의 이론대로라면 이 짐은 저와 함께 가야하는 거죠.”

결론이 이상하잖아?!”

 

말을 끝내고 마늘빵을 잽싸게 입에 넣은 카트리가 입을 우물거리며 남자에게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잠시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이윽고 꿀꺽, 하고 음식을 삼키고는 진심으로 남자의 짐도 꿀꺽할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짐짝을 툭툭 건드렸다.

 

그럼 이 짐은 어떡해요? 혼자 쓸쓸히 주인에게 버려진 채 세상을 떠돌라고요? 새 주인을 찾아야 마땅하다고 보는데요. 이 짐도 똑같은 처지인 제가 가져가는 걸 바라고 있을 거예요.”

그럼 난 네 짐을 가져가겠어!”

그럴 수는 없죠. 왜냐하면 제 짐은 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이익……!”

 

카트리는 억지 부리는 사람을 마주한양 눈썹을 축 내렸다. 남자는 카트리에게 반박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나 분노와 당혹감에 못 이겨 입이 절로 뻥끗거렸다. 그러나 주위의 시선과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간간히 들려오는 웃음 참는 소리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고심한 끝에 남자는 물러서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발을 슬쩍 되물리는 남자의 모습을 본 카트리는 마무리로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손을 탈탈 털었다. 기나긴 언쟁 중에도 틈만 생기면 입 안에 한가득 음식을 욱여넣었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이었다. 감탄의 목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주위를 둘러본 카트리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저기요! 오징어 구이 하나 더 주세요!”

 

 

 

흰 구름과 그늘과 선선한 바람이 찾아오는 것과 동시에 카트리의 순서가 됐다.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태연한 얼굴을 한 카트리는 입국관리원으로 보이는 경비대원의 앞에서 통행증을 꺼내들었다.

 

시원해 보이시네요.”

 

경비대원의 아무 의미 없는 잡담으로 보일 수 있는 말에 카트리가 반응했다.

 

“A국에서 구매한 아이템인데 요긴하게 쓰고 있죠.”

 

카트리의 품속에는 풍속성 마법이 걸린 마도구가 있다. 가까이에 있는 경비대원에게도 바람이 간 모양이었다.

 

그곳은 마도구가 발달했다더니 정말인가 보네요. 언젠가 저도 가보고 싶어요.”

 

위조 통행증을 걸러내는 마도구가 통행증을 읽어내는 동안, 할일이 없는 경비대원이 일이 바빠 여행은 꿈도 못 꾼다며 불평을 털어내고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카트리를 응시했다. 여행자로 보이는 카트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눈치였다.

 

구름 한 점 없었는데 당신의 차례가 되니까 구름이 몰려왔어요. 이것도 마법인가요?”

설마요. 날씨를 조종할 정도면 대마법인 걸요.”

이 정도면 정령의 가호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한결 시원해진 날씨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경비대원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키득거렸다.

 

정말로 정령에게 사랑받고 있다면 한참 줄을 서고 있을 때 구름이 찾아왔겠죠.”

카트리는 사실상 마도구 덕분에 날씨의 악영향은 받고 있지 않지만 운이 비껴나갔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에 쓴웃음을 지었다.

경비대원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낌새를 보이더니 혼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마도구처럼 바람 같은 사람이겠군요.”

 

바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요.

그렇게 말하는 경비대원의 온화하면서도 어딘가 장난스러운 공기를 두른 어투에 카트리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주시했다. 카트리가 남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 혹시──

 

삑삑, 삑삑.

무슨 타이밍인지 카트리가 말을 꺼내자마자 통행증을 삼켰던 마도구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카트리의 통행증을 뱉어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카트리는 출국할 때도 그녀가 있기를 바라며 움직일 채비를 했다.

그러나 카트리에게 있어서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카트리의 통행증을 든 경비대원이 종이쪼가리에 쓰인 글씨와 카트리를 번갈아보며 굳어 있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을 떼며 충격적인 말을 한 것이다.

 

카트리에일 레이튼 씨, 죄송하지만 경비대까지 따라와 주셔야겠습니다.”

 

 

 

카트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뒷목을 어루만졌다. 생전에 안 오던 두통이 오고 어깨가 결리는 느낌이었다.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다니,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겪어보지 못한 일을 꼽으라면 지금 이 순간을 고르겠지. 통행증을 갱신한 건 비교적 최근이었고, 다른 마을에서 말썽이 있긴 했지만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고, 남의 원망을 살 일이 아예 없었다고는 단언하지 못하겠지만 원한을 살 정도는 아니었으니 수배범이 되었을 확률은 얼마 없다.

이렇듯 자신에게 떳떳했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담소를 나누던 경비대원이 얼굴도 마주쳐오지 않는 점이 카트리의 가슴을 쑤셔왔다.

경비대의 문턱이 보일쯤에 경비대원이 카트리를 뒤돌아보았다.

 

레이튼 씨, 당신을 여기까지 불러낸 이유입니다만…….”

…….”

 

무표정 뒤의 불안을 꿰뚫어본 경비대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늦게 원인을 알아채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입국심사는 문제없었습니다! 아니지, 문제는 있었는데 레이튼 씨 잘못이 아니에요!”

 

아니라는 말을 4번이나 연호한 경비대원이 카트리의 손을 꼭 붙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그녀가 입을 열기 까지는 무척이나 오래 걸렸으나 카트리가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대장님과 어떤 사이시죠?”

 

오빠라는 작자가 무슨 사고를 쳤겠거니, 하고 말이다.

대장님. 카트리는 그 말을 머릿속에서 곱씹었다. 오빠인 알펜디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과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주고받는 편지로 경비대장까지 기어 올라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카트리가 여행을 떠난 시기는 그가 왕실기사단에서 경비대로 좌천되다시피 하며 쫓겨난 시기와 맞물렸기에 그 이후의 오빠 되는 사람의 행적을 카트리는 동화책의 줄거리를 아는 정도로 밖에 알지 못했다.

 

그 말을 입에 대기는 껄끄러워서 그런데 본인에게 물어보면 안 될까요? 지금 어디 있죠?”

……질문에 먼저 대답해주신다면 저도 말하겠습니다.”

 

카트리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어렵사리 대답했다.

 

일단 호적상 동생 되는 사람이랍니다.”

대장님에게 가족이란 게 존재했다니……. 소환마법으로 불러낸 악마가 아닐까 하는 설이 가장 유력했는데.”

 

알펜디가 경비대에서 어떤 인간으로 통하는지 알만 했다.

 

실례지만 전혀 닮지 않으셔서 몰라 뵀어요.”

그거 더할 나위 없는 칭찬으로 들리는데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변함없이 잘 지내나 보네요.”

하하, 잘 지내시죠…….”

 

입가를 씰룩거리며 맞장구친 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 했으나 그걸 듣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녀가 카트리의 질문에 답할 차례였다.

 

가족분께 이런 말은 하기 힘듭니다만대장은 지금 근신처분을 받고 자택에 계십니다.”

몇 번째 근신인지는 묻지 않고 넘어갈게요. 그래서 알펜디가 벌 받는 중인게 제 입국심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근신 중에는 자택 외의 출입이 제한되는 거 아시죠? 지금 알펜디 레이튼이라는 이름으로 출입국이 막혀있는 상황입니다만……, 그게…….”

 

상황이 짐작이 간 카트리는 말을 아꼈다. 입을 열면 좋은 말이 안 나올 건 분명했으니 말이다.

 

마도구에 특정이름을 입력하려면 아시다시피 많은 수고가 듭니다. 길면 길 수록이요. 근신처분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보통은 풀네임을 안 쓰고, 이름도 겹칠 수가 있으니 성을 입력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은 나라 밖으로 나갈 일도 잘 없으니 가족단위로 출입국을 금지해버려도 별 일이 없거든요. 서류상 현재 런던에 살고 있는 레이튼은 대장님뿐이라, 상부도 생각 없이 일을 처리했지 싶어요…….”

 

경비대원이 카트리의 안색을 살펴가며 조심스레 통행증을 살폈다. 입국심사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빨간 낙인이 과할 정도로 큼지막했다. 근신처분을 받은 알펜디가 뻔뻔스레 입국관리장에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커져서 이렇게 된 것이다. 파란 낙인으로 들어찼던 통행증에 틀림없는 오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경비대원의 곁에서 통행증을 훔쳐본 카트리가 그 새빨간 낙인을 보며 누구를 떠올리고 있을지는 누가 봐도 뻔했다. 붉은 머리카락의 경비대장을 머릿속에서 몇번이나 걷어차고 있는 카트리를 진정시킨 건 경비대원이 흘린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이 낙인, 경비대의 마법 스크롤로 지울 수 있어요. 저도 사용할 수 있으니 지워드릴게요.”

 

통행증의 낙인은 오직 경비대의 마법으로만 지우거나 덧씌울 수 있다. 이 부문만큼은 왕실의 기사단이나 호위대가 대신하지 못하는 경비대만의 분야였다. 통행증의 낙인을 바꿀만한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뒷돈이 오가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그 마법을 실제로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흥미가 끌리는 이야기에 카트리가 표정을 싹 바꾸고 그녀의 뒤를 따라 경비대의 막사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네요?”

축제 기간이라 원체 바빠야 말이죠.”

그 와중에 경비대장은 근신 중인 거군요.”

 

카트리는 그가 귀찮은 일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근신처분을 받을 만한 사고를 친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으나 부하의 앞에서 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 애매한 미소만 지었다. 의혹을 입 밖에 내는 대신 이제까지 신경 쓰이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저 혹시, 이름을 여쭈어 봐도 될까요?”

 

그녀는 그제 서야 통성명을 하지 않은 상태로 데리고 왔다는 결례를 깨닫고 눈에 띄게 허둥지둥 댔지만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카트리도 사교성은 있는 편이었지만 그녀와는 초면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 잘 통했기 때문이다.

 

루시, 루시 베이커입니다!”

 

경례를 하고 차렷 자세를 취한 루시는 카트리가 상관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모양인지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저에 대해서는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카트리에일 레이튼이라고 해요. 사실 저도 루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어요.”

 

초면인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섬뜩한 일이다. 카트리는 서둘러 덧붙였다.

 

알펜디와는 가끔 편지를 주고 받는 정도의 연락은 하고 있었거든요. 삭막한 편지긴 하지만요. 거기에 루시에 대한 것도 적혀있었어요.”

 

각지를 여행하는 카트리와 편지를 주고받기란 쉽지 않다. 카트리가 다음 목적지를 편지에 쓰고 알펜디가 그곳의 모험가 길드로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편지가 이어져왔다. 그마저도 상황에 따라 행선지가 바뀌는 일도 있으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편지를 잇기 위해서는 조금 늦어지더라도 편지에 적었던 장소에 반드시 들려야 했다. 길드에 가도 알펜디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은 경우가 파다했지만 말이다. 편지는 마법으로 이송되기에 늦게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답장을 쓰지 않은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다음에 들릴 마을 이름만을 적어 편지로 보낸다.

카트리와 알펜디는 서로가 서로의 간단한 근황정도만 알면 충분했기에 편지의 내용은 항상 간결하고 다소 딱딱한 느낌이었는데, 어느 시점을 경계로 알펜디가 카트리의 안부를 물어왔다. 편지의 내용이 길어지고, 매번 답장을 하게 되었으며, 카트리의 몸 상태를 걱정하면서 노잣돈으로 쓰라는 문구와 함께 돈을 붙여줬다.

하필이면 건강을 걱정하며 노잣돈을 챙겨주니 어디 가서 뒈지란 말인가 하고 카트리도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그 돈을 써서 마을의 특산품인 '둘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버섯' 을 보냈더니, 고맙다는 말을 길게 풀어쓴 장문의 답장이 왔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맨 처음 편지의 문체가 바뀌었을 때는 알펜디가 자신을 놀리려는 줄 알았다. 그 후에 몇 번이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알펜디 몸에 일어난 이변을 늦게나마 눈치 챘으나, 고향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 낯짝이 없었다는 게 맞았다. 가족에게 일이 생긴 동안 가족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돌아가려면 진작 돌아가야 했으니까.

알펜디의 몸에 또 하나의 정신이 깃들기 전에.

카트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될 바에야 지나가는 들소를 붙잡아 도망간 소를 쫓는 타입이었다. 박살난 외양간은 나중이었다.

 

오빠가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아뇨아뇨, 저야말로!”

편하게 말해주세요! 저는 알펜디보다 훨씬 어리거든요. 딱히 직급도 없고요.”

 

그 박살난 외양간을 고쳐준 사람이 루시다.

알펜디의 문체에서 다시 예전의 그림자가 엿보이기 시작한 것은 편지에서 루시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부터였다. 카트리는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으나 자신이 없는 사이 루시가 알펜디의 곁에서, 알펜디가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펜디에게 있어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라면 카트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소를 되찾고 돌아올 장소가 고쳐졌을 뿐만 아니라 더 넓어져있으니 최상의 결과였다.

 

흐음, 그럼 사양 않고! 잘 부탁해, 카트리!”

 

환한 미소를 띠우며 악수를 청하는 루시에게 카트리도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있는 것만으로 주변이 확 밝아지는 듯 했다.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은 카트리는 입국심사 때 루시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루시는 태양 같은 사람이네요.”

 

루시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다가 웃긴 얘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실없는 미소를 흘렸다.

 

기쁜데 기분이 좀 묘하네. 난 평소에 대장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알펜디가요?”

 

무심코 되물은 카트리가 금세 납득하고 루시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루시와는 다른 의미로 태양 같은 사람이지 않은가. 순식간에 사람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강렬함. 태양이 이글거리듯이 물결치는 아지랑이 같은 머릿결.

 

하긴, 그 불같은 성미에 데이면 뜨겁죠.”

 

루시는 대답 대신에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카트리에게 동의했다. 통행증의 빨간 동그라미가 태양처럼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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