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소설

카트제럴 판타지 AU 프롤로그

블랙커피우유 2018. 5. 27. 05:00

*퇴고 없음/카트제럴 전제/장편 연재/내킬 때마다 올라옴/판타지 AU



0-1.

넓적한 돌이 서너 번 물 위를 튀다가 수많은 조약돌 속에 섞여 들어갔다.

조약돌은 그렇게나 작은데도 물의 흐름에 끄떡도 하지 않는다. 몇 번째일지 모를 돌을 집어던진 카트리가 바짓단을 걷어 올려 물속으로 들어갔다. 태양빛에 반사되어 투명하게 빛나는 강물. 물로 된 막에 둘러싸인 듯이 옹기종기 모인 돌들도 마찬가지로 보석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카트리는 그것들을 자근자근 밟아대며 의미도 없이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돌았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 첨벙거리는 물소리, 물속에 흔들려 보이는 자신의 발과 눈부신 빛을 한가득 머금은 풍경. 멀리서는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작은 야생동물들이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카트리에게 있어 이 모든 건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조약돌처럼 많이도 보아온 풍경이다. 그러나 물에 발을 담글 때, 문득 고개를 들고 주위의 경관을 살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그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재촉하던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자연은 없던 여유도 심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카트리의 여행은 위험을 동반하기는 했으나 마음만은 꽤나 느긋한 여행이 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폭포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물줄기가 기세 좋게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카트리의 모험담을 빗대기에 이보다 적절한 것은 없으리라. 기세 좋게 뛰쳐나왔으나 폭포처럼 거대해지지는 못한, 허나 틀림없이 남들보다는 험난하고 장대했던 모험.

카트리는 실종된 대모험가 허셜 레이튼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왔다. 허셜은 카트리의 아버지이자, 일명 던전이라 일컬어지는 전 세계의 수수께끼를 해명한 장본인이다. 던전 안에는 몬스터가 살며, 아무도 모르는 신비가 잠들며, 옛날 옛적에는 누군가의 소유였을지도 모르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카트리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잊어버렸으나 아주 어릴 적부터 허셜을 따라 던전에 들어가곤 했다. 처음에는 카트리를 떼놓고 가던 허셜 일행도 카트리의 미행을 눈치 채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일행에 합류시켜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동료도 뭣도 아닌 걸림돌에 불과했지만서도. 위험한 곳에 들어갈 때에는 절대 뒤를 쫓지 못하게 따돌렸던 그의 고생을 돌이켜보며 카트리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허셜 레이튼이 실종된 지도 벌써 5년이다. 한때 그의 동료였던 자들도 소식을 알 수 없다.

들어선 사람을 과거로 데려가는 거대도시,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동굴, 고대문명이 잠든 유적지 등등…….

집을 나선 카트리는 그가 이전에 공략했던 던전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곳들을 먼저 찾아가보았으나 그런 곳들은 늘 허탕이었다. 아빠는커녕 던전의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신비로운 던전들은 수수께끼를 풀자마자 붕괴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던전의 발굴자이면서도 던전의 유일한 발견자였다. 세상의 모든 신비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허셜의 모험담을 듣고 자란 카트리로서는 이보다 더한 고문은 없었다.

모든 수수께끼를 독차지하고 사라진 아빠를 찾으면 나도 아빠 같은 대모험을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허셜을 찾고 있는 건지 어려운 던전을 찾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분간이 가지 않았으나 즐거우면 만사 오케이였다. 카트리는 가슴속에 쌓인 불평불만이 있긴 해도 언제 어디에서나 즐거운 것을 찾아내는 천재였다. 부친이 행방불명된 와중에 태평하다고 할지도 모르나 사실 위기감 같은 건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천하의 대모험가가 어딘가에서 픽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이 상상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정이 있기야 하겠지. 가족을 남겨두고 말없이 홀랑 사라질 사람이 아니니까. 말없이 홀라당, 사라져버렸지만. 괜히 이상한 일에 휘말린 건 아닌지 걱정이야 됐지만 그보다도 괘씸해서 화내려고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이보쇼!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해가 지겠는데!”

퍼뜩 얼굴을 든 카트리가 목소리가 난 방향에 시선을 돌렸다. 회상에 잠긴 카트리를 현실로 되돌린 목소리의 주인은 나무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 카트리는 자신이 귀향 도중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머쓱해졌다. 가족에게 몇 년이나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자신도 마냥 아빠를 탓할 처지는 못 되었다.

단숨에 물을 헤치고 나온 새하얀 발이 반복해서 곡선을 그리며 물기를 탈탈 털었다. 바짓단을 내리고 후다닥 짐을 챙긴 카트리는 서둘러 남자의 곁으로 향했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마냥 해맑게 첨벙거리는 카트리가 고까울 만도 한데, 그럼에도 남자가 조금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이유는 보수를 심심치 않게 챙겨줬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너무 노닥거렸죠? 이만 갈까요!”

 

 

구름이 한가로이 떠다닌다.

짚단 위에서 팔베개를 벤 카트리는 흔들거리는 몸에 맞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구름으로 연상되는 음식들을 상상해보는 것도, 허허벌판에서 여우를 뒤쫓는 아저씨가 언제 나가떨어질지 예상하는 것도 지루해졌으니.

카트리가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실로 4년만의 일이었다. 귀향을 미루고 미룬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실종된 아빠를 찾겠다며 패기롭게 뛰쳐나와 놓고 4년의 시간을 투자했으면서도 마땅한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 집을 나올 당시 오빠라는 작자가 보였던 그래봤자 소용없을 텐데라는 미적지근한 표정에 과열된 고집, 그리고 또…….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단 말이지.”

세계 각지를 누비는 여행길. 처음 밟아보는 땅과 색다른 공기, 전혀 다른 문화와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의 접점. 허셜이 탐험했던 던전만큼은 아니어도 카트리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가로막는 각양각색의 던전. 무엇보다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그 지역의 특산요리들. 카트리의 흥미를 끄는 것 투성이였다. 아니, 흥미를 끄는 것밖에 없었다.

뭐가 말이오?”

카트리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질문하는 남자의 말에 카트리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반대쪽 다리를 꼬았다.

세상 밖이요.”

카트리는 놀란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대답하는 카트리의 입에는 향기로운 꽃내음이라도 맡은 것처럼 은은한 미소가 걸려있었으나 말수레를 끄는 그가 보지는 못했다. 카트리가 멍한 표정으로 돌아왔을 무렵에 때마침 남자가 고개를 돌려 카트리를 잠시 쳐다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멀리 나가있었나 보지?”

예에, . 4년 정도 고향에서 떨어져 있었네요.”

그동안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은 건가?”

그렇게 되네요.”

돌아갈 이유가 없는지라. 헛웃음과 함께 뱉을 뻔한 말은 입안에서 돌고 돌다가 사라졌다. 여행 중에 어렵사리 몇 번인가 주고받은 편지로 오빠 되는 사람이 성가신 일에 휘말렸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미 지난 일이면 뭐 상관없나 싶어 개의치 않았다. 카트리의 개입을 원치 않았기에 모든 게 정리된 후에 연락한 것일 테고. 그런고로 최근 몇 년간은 정말로, 편지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마저도 답장이라기보다는 근황보고에 가까운 형태였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가족과 대판 싸우고 집을 나온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도착했소.”

감사합니다.”

카트리는 남자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짚단더미에서 뛰어내렸다. 말수레가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뿐히 착지한 카트리가 그에게 묵직한 돈 자루 하나를 내밀었다.

무사히 도착했으니 약속대로 나머지 금액을 지불할게요.”

정말로 받아도 되는 거요? 이정도 금액이면 마차를 타고 오는 게 나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가 돈주머니를 움켜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몸은 정직하다지. 카트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마차는 엉덩이가 아파서요.”

별난 아가씨군.”

카트리를 찬찬히 뜯어보는 눈빛은 뒤가 구린 놈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 분명했으나 카트리는 굳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에게 고향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했을 때에도 받았던 눈초리였다. 카트리가 묵묵히 시선을 견디는 이유는 그가 의심하는 수많은 가능성들은 실제로도 피해자가 빈번히 속출하는 일이고,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경계해야 하는 일이 맞기 때문이다. 남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더니 조금 후에 말문을 열었다.

나에게도 자네정도 되는 딸이 있는데 말이요…….”

그러나 남자가 눈을 깜빡였을 때 카트리는 이미 저만치 앞을 여유작작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기운 빠진 목소리가 카트리를 불러 세웠으나 카트리의 발걸음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트제럴 판타지 AU 1-3.  (0) 2018.06.14
카트제럴 판타지 AU 1-2.  (0) 2018.06.04
카트제럴 판타지 AU 1-1.  (0) 2018.06.02
카트제럴 판타지 AU 프롤로그(제럴딘 시점)  (0) 2018.05.28
안개 막을 뚫고 침투하는 약  (0) 2018.01.13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